디자인 일을 하다 보면 한 번쯤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영감은 어디서 얻으세요?"
나 역시 디렉터 분들이나 패턴, 소재, 컬러 연구를 하는 분들에게 이런 질문을 해본 적이 있다.
트렌드를 읽고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끊임없이 영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영감은 특별한 장소에 가거나 유명한 전시를 보고, 새로운 것을 경험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느꼈던 것 같다.
본업으로 디자인을 하고 있는 나조차도 새로운 것에 대한 목마름 때문에 이런 질문을 던졌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패션 소재를 오랫동안 다루면서 조금씩 생각이 달라졌다.
수많은 옷을 보고, 어떤 소재를 사용했는지 살펴보고, 그 소재가 어떤 디자인으로 완성되었는지 관찰하다 보니 내가 궁금했던 것은 단순히 '영감을 어디서 얻느냐'가 아니었다.
오히려 발견한 영감을 어떻게 해석하고, 내가 속한 브랜드의 디자인으로 어떻게 녹여내느냐에 가까웠던 것 같다.
지금은 일부러 영감을 찾으러 다니기보다는 평소에 보이는 것을 관찰하는 편이다.
소재 디자이너에게는 일상에서 발견하는 색과 질감, 반복되는 패턴 자체가 좋은 디자인 자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 가장 먼저 보는 것은 '색'보다 분위기다
길을 걷다가 예쁜 색을 발견하면 바로 색상명을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왜 예쁘게 느껴졌는지를 먼저 생각한다.
그리고 사진에 담아두려고 한다.
예를 들어 오래된 건물의 벽에서 빛이 바랜 베이지와 회색이 함께 보였을 때, 단순히 베이지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색들이 서로 어울리면서 만들어내는 차분한 분위기를 기억하려고 한다.
이런 관찰은 나중에 컬러를 기획할 때 도움이 된다.
실제 패션 소재에서는 단 하나의 색보다 여러 색이 함께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더 중요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업무에서는 직접 입어보고 그 옷이 내 얼굴톤과 어떻게 반영하는지를 보고 그 컬러가 마음에 든다면 눈으로 외우고 자리로 돌아와서 그 유사 컬러를 찾아내느라 엄청난 시간을 공들였다.
2. 원단을 볼 때는 손으로도 확인한다
소재 디자이너에게 원단은 눈으로만 보는 대상이 아니다.
가능하면 직접 만져본다.
부드러운지, 거친지, 탄성이 있는지, 가벼운지 무거운지, 표면에 결이 있는지 등을 손으로 느껴본다.
재미있는 점은 눈으로 봤을 때 예상했던 느낌과 실제로 만졌을 때의 느낌이 다른 원단도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소재를 접하면 사진을 찍어두는 것만큼 직접 만져보고 기억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나중에는 눈으로만 봐도 어떤 소재인지 손으로 만진 느낌이 난다. 아니면 눈으로만 봐도 혼용률이 뭔지를 알아차릴 때도 있다.
처음 대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때 원사 구별법이라고 해서 원사를 태워서 그 냄새를 맡고 확인하는 수업을 들은적이 있었는데
그 방법밖에 없었다면 아마 냄새에 예민한 원단 디자이너라고 칭하지 않을까? 라는 웃긴 생각을 하기도 한다.
3. 패턴은 의외의 장소에서 발견한다

패턴에 대한 영감은 패션 잡지나 원단 샘플에서만 얻지 않는다.
창문의 반복되는 구조, 바닥 타일의 배열, 건물 외벽의 선, 오래된 간판의 글자 배치처럼 일상적인 곳에서도 반복과 간격을 발견할 수 있다.
이건 특히나 나의 방식이다. 잡지나 원단 샘플은 어느 정도 컬러 까지는 참고 할 수 있지만 다양한 패턴을 생각하려면 보는 눈을 넓히는 방법이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는 선을 보면 스트라이프 원단이 떠오를 수도 있고, 서로 다른 크기의 사각형이 반복되는 모습을 보면 체크나 그래픽 패턴으로 연결해서 생각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이미지를 그대로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디자인의 원리를 발견하는 것이다.
'선이 반복되고 있다.'
'간격이 점점 달라지고 있다.'
'같은 모양인데 크기가 다르다.'
이렇게 관찰하면 하나의 이미지에서도 여러 가지 디자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4. 사진을 찍을 때는 예쁜 것만 찍지 않는다


예전에는 예쁜 풍경이나 예쁜 원단을 발견하면 사진부터 찍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사진을 찍는다.
완성된 모습보다 내가 흥미롭게 느낀 부분을 잘라서 기록한다.
벽의 일부, 원단의 표면, 옷에 들어간 작은 패턴, 오래된 가구의 색이 바랜 부분처럼 전체적으로 보면 특별하지 않은 장면도 사진으로 남긴다. 만약 전체 사진을 찍어도 사진 안에서 또 한 번 더 바라봤을 때 상황에 따라 부분이 눈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어서 그 부분은 따로 캡처해서 기록해 둔다.
나중에 다시 보면 그 작은 부분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기기도 한다.
특히 디자인 작업을 할 때는 완성된 이미지를 그대로 따라 하는 것보다 그 안에 있는 일부 요소를 가져오는 편이 훨씬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5. 서로 다른 것을 연결해본다
내가 디자인 영감을 얻을 때 가장 재미있다고 느끼는 과정은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두 가지를 연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패션 원단의 스트라이프를 보면서 손톱 위의 선으로 연결해 볼 수 있다.
체크 원단을 보면서 네일의 격자 패턴을 생각할 수도 있고, 스웨이드의 부드러운 표면에서 매트한 네일의 질감을 떠올릴 수도 있다.
트위드의 복잡한 실의 교차에서는 작은 선들이 겹쳐지는 네일 아트의 표현 방법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이런 방식으로 보면 패션과 네일은 완전히 다른 분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색, 질감, 패턴, 비율이라는 공통된 디자인 언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근데 원단 디자이너로서 아쉬운 점이 있다
서로 다른 소재를 조합했을 때 시각적으로는 아주 멋진 결과가 나오더라도, 실제 의류는 소비자가 직접 입고 세탁하면서 사용하게 된다.
따라서 단순히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소재를 선택할 수는 없었다.
원단의 수축률이나 이염 가능성, 마찰에 따른 변화, 세탁 후 형태 변화처럼 실제 착용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까지 미리 생각해야 했다.
그래서 소재 디자이너의 영감에는 늘 현실적인 조건이 따라왔다.
아름다운 소재를 발견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소재가 실제 제품이 되었을 때도 기능할 수 있는가까지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네일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느끼는 재미는 조금 다르다.
물론 네일에도 유지력이나 손톱의 상태 등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지만, 소재를 기획할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아이디어를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패션 소재에서 익숙하게 보았던 질감이나 패턴을 훨씬 작은 공간인 손톱 위에서 다시 해석해 보는 과정 자체가 새로운 공부가 되고 있다.
마치며. 결국 영감은 특별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15년 동안 패션 소재를 다루면서 알게 된 것은 디자인 영감이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원단을 만져보는 순간에도 있고, 길을 걷다가 발견한 오래된 건물의 색에서도 있고, 반복되는 창문의 선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요즘은 네일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이전과 같은 장면을 보더라도 조금 다른 질문을 하게 된다.
'이 질감을 손톱 위에 표현한다면 어떨까?'
'이 색 조합을 네일 컬러로 바꾸면 어떤 느낌일까?'
'이 패턴의 일부만 가져오면 어떤 디자인이 될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순간 일상적인 장면도 하나의 디자인 자료가 된다.
나에게 영감을 찾는다는 것은 특별한 것을 발견하는 것보다 평범한 것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는 것에 더 가깝다.
패션 소재와 네일 디자인을 함께 공부하고 있는 지금은 오히려 두 분야 사이의 연결점을 발견하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다.
앞으로도 일상에서 발견한 색과 질감, 패턴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기록하면서 나만의 디자인 언어를 조금씩 만들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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